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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른 세 살 신규간호사의 블로그
간호사가되겠다고?/3학년일기

[서른한살, 간호학과3학년] 편입하고 받은 성적

by 애착인간 2020. 7. 24.

나와 선배는 자대병원이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간호학과는 4학년 1학기가 끝나고 2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취업면접을 다닌다. 이번 자대병원 취업시즌이 끝나면서 마지막 면접이 끝나고 나서 선배가 전화오더니 하는말, "OO야.. 성적관리.. 열심히 해야겠어.." 내 성적을 알고 있는 선배는 나와 나이도 같은 만학도이다. 격동의 학교생활을 겪었지만 나와는 다르게 성실하고 노력파라 성적도 좋고 못하는 것도 없는 멋진 친구인데 언제나 멍한 나를 걱정한다. 

 "내가 도와줄테니까 열심히좀 해봐"

친구야.. 나는 열심히 하는거야. 머리가 나쁜데 어떻게 하니? 운이 좋아서 좋은 학교에 들어왔을 뿐, 나는 내가 시험에 최적화된 인간도 아니며 그렇다고 다른 머리좋은 친구들의(나이도 어린 친구들의) 3~4배를 노력해서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열정적인 인간도 아닌 것은 수능을 칠때조차 졸아버린 나를 보며 알아버렸었지. 내가 언젠가 공부로 성공해서 효도시켜 드릴 거라고 믿고 계시는 아버지에겐 아직도 죄송스럽다. 

 처음 편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면접준비를 할 때는 정말 어느 학교든 붙기만 한다면 열심히 할 열의에 가득 차 있었다. 면접 대본을 쓰면서 스스로 내가 면접관이라고 해도 이여자 정말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 눈에 독기를 가득품고 준비했었다. 그 덕분인지 지원했던 학교의 대부분에서 좋은 소식을 들었고 그 중 가장 좋은 학교에 붙어서 들어올 수 있었다. 가장 좋은 학교인 줄 알았지만 그 안에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는 정말 몰랐지.. 

 안일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갈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갈때 사람들은 정말 자연스럽게 이제 새로 입학하면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열의에 가득 찬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나도 그랬다. 나이 서른에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다른 인터넷의 이야기들이나 간호학과 졸업한 친구들의 전설적인 만학도 동기들처럼 나도 공부만 하는 언니가 되어 졸업할 때 쯤에는 정말 멋진 SN(student nurse)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그랬듯이, 나 또한 그 기대는 내 게임 한 판, 영화 한 편, 그리고 불안과 우울에 갇혀 제대로 기 한 번 펴지 못한 채 뒤로뒤로 열심히 밀려났고, 첫학기가 끝난 후 받아든 성적표에는 첫번 째 졸업했던 학교에서 시험 전날 하루 공부했을때도 받아보지 못한 교수님이 뿌린 씨앗(C)이 가득했다.

 그 다음엔 보통 어떻게 하는 지 아는가? 아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나보다! 싶어서 열심히 한다. 내 2-2학기가 그랬다(간호학과에 편입하면 2학년으로 시작하여 4학년까지 다닌다. 서류상으로는 3학년이지만 2학년 학생들과 함께 공부한다) 학교에서 돌아와 거의 매일 놓치지 않고 복습을 하고 공부를 했다. 모든 과목은 아니지만 높은 평점을 차지하는 과목들(성인간호학 등)을 예습하거나 복습했고 시험기간에는 실습없이 10과목을 무사히 치러냈다. 중간을 간신히 벗어난 성적을 받았고 이게 잘본건지 못본건지 잘 모르겠을때 기말고사를 보게 되었다. 내 한량과도 같은 성격은 뭔가를 너무 열심히 하면 현타가 오고 힘들어져서 그래 딱 중간고사만큼만 하면 평균 B는 나오겠구나 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어림도 없는 소리였지. 목표가 낮으면 실제 받는 성적은 더 낮다. 결국 중간고사에서 중간이나 가던 과목들을 다시 기말에 바닥을 쳐서 또 씨앗을 엄청나게 받아버렸다. 

 3학년 1학기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기억도 잘 나지 않고, 딱히 열심히도 한 것 같지 않으니 아직 나오지도 않은 성적 이미 알 것 같다. 

 더 잘 받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나는 미국에 갈 생각으로 간호학과에 온 것이라 사실 미국가는데 학교 성적은 필요 없지만, 그래도 성적 잘나오면 기분좋고 자부심도 들고 그러지 않는가. 하지만 더 열심히 살걸 그랬다 하는 후회는 이상하게 들지 않는다. 이미 이정도도 내 기준에서 정말 열심히 살았음을, 나는 안다. 중간에 휴학하겠다는 말도 없이, 중간중간 불안으로 상담을 받으면서도 단 한번의 지각도 결석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칭찬하겠다. 나이 먹고 학교다니는 게 힘든 걸 내가 위로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1등의 이야기. 열심히 살았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 것이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겹게 듣지 않았는가? 나는 그저 평범한, 공부하려 앉으면 핸드폰을 보는 당신보다 조금 더 게으른 사람일 뿐. 어디에나 꼴찌는 있다.